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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날짜 2009-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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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리(종리)] [종리문답] 믿음 이야기
내용  

[1] 한배검께서 어천대에 오르실 때에「삼천단부」의 무리들은 어찌 하였습니까?

-인간적으로는 얼마큼 섭섭한 생각도 있었겠지만, 즐겨하는 경축소리가「봄한울」을 울리었을 것입니다.

[2] 한배검께서 인간세상을 뒤로 하고 한울로 오르시는데 어찌 경축을 하였겠습니까?

- 한배검께서 인간을 버리심이 아니라, 인간의 힘만으로도 잘 살아갈 것을 증명하심입니다.

[3] 한배검께서는 우리 인간이 잘 살아갈 것을 무엇으로 증명하셨겠습니까?

- 인간 살림에 필요한 모든 제도를 만들어 주셨는데 사람은 탈이 없고 해마다 풍년이며, 또 나라의 안·밖에 도적이 없었음을 보셔도 아실 것입니다.

[4] 백성의 큰 행복은 나라의 안·밖에 도적이 없음인데 그 원인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 나라의 안·밖 도적이 없음은 무엇보다도 백성의 마음이 화순하고 나라에 힘을 모이게 한 까닭일 것입니다.

[5] 백성의 마음을 화순하게 하고, 나라에 힘을 모이게 한 것은 어떤 힘으로 되었습니까?

- 한얼의 도리로써 베푸신 한배검의 교화가「삼천단부」의「뭇마음」을 깊이 느끼게 하신 힘입니다.

[6] 우리 인간이 대교(大敎)만을 정성껏 믿으면 언제나 큰 행복을 누릴 것입니까?

- 아무럼요!「배달시대」는 물론이오 부여(扶餘)·삼국(三國)·남북조(南北朝)·고려(高麗)시대를 통하여 3500년 동안의 빛난 역사를 가졌습니다.

[7]「배달시대」에는 대교를 어떻게 받들었습니까?

-「배달시대」일천년 동안에는 한배검의 친히 가르치심을 본받아서 잘 지켰는데,「한검수」라 이름하였습니다.

[8]「한검수」의 뜻은 무엇입니까?

-「한검」은「한울임금」의 뜻이오,「수」는 옛말에 교당(敎堂)을「수두」[솟대(蘇塗)]라 한 것을 미루어 보면「한검수」는 곧 대종교(大倧敎)입니다.

[9]「부여시대」에는 대교를 어떻게 받들었습니까?

-「부여시대」일천년 동안에는「대천교(代天敎)」라 이름하였고, 해마다 봄·가을에「한울모둠」[天序會]에서「아홉맹서」[九誓]를 공포(公布)하였습니다.

[10]「한울차례모음」이란 무엇입니까?

-부여 풍속에「나라사람」이 모이되 나이「年」의 차례로 앉아서「아홉가지맹서」를 읽은 뒤에 서로 절[拜]하는 예식이 있었습니다.

[11]「아홉가지맹서」는 무엇입니까?

-효도하지 않는「이」와 우애하지 않는「이」와 믿음이 없는「이」와 충성하지 않는「이」와 공손하지 않는「이」를 모두 쫓아내고, 공익사업(公益事業)에 힘쓰며, 허물을 경계하며, 환란(患亂)을 구원하며,「풍속예절」을 지킴입니다.

[12]「삼국시대」는 어떤 때입니까?

-북에 고구려와 남에 백제(百濟)·신라(新羅)의「세나라」가 함께 칠백년(七百年) 동안을 지내던 때입니다.

[13]「삼국시대」에는 대교를 어떻게 받들었습니까?

-고구려에서는 경천교(敬天敎)라 하고, 신라에서는 숭천교(崇天敎)라 하며, 모두「다섯가지경계」[五戒]로써 믿는「이」의 마음을 단속(團束)하였습니다.

[14]「다섯가지경계」는 무엇입니까?

-「다섯가지경계」는『아버지를 효도로써 섬기고, 임금을 충성으로써 섬기고, 벗을 신의(信義)로써 사귀고, 싸울때에 물러가지 말고, 짐승을 가리어 잡으라.』는 것입니다.

[15] 백제에서는 대교를 받들지 않았습니까?

-아닙니다. 이름은 특별히 없었으나 고을마다 교당을 세우고 한얼께 제사 드리는「이」를 천군(天君)이라 불렀습니다.

[16] 한얼께 제사 드리는 예식을 대대[世世]로 받들어 왔습니까?

-한얼께 제사를 드림은 어떤 겨레든지 다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그 이름을 부여는 영고(迎鼓), 예(濊)와 맥(貊)은 무천(舞天), 진한(辰韓)과 변한(弁韓)은 계음(계[*벼 계]飮), 삼한이즘을 샤머니즘으로 부르며 고구려는 동맹(東盟), 백제는 교천(郊天)이라 하였습니다.

[17] 예·맥과 진한·변한은 어떤 겨레입니까?

-예·맥은「배달시대」에 지금 봉천성(奉天省) 서북(西北)쪽에서 살았고, 진한·변한은「부여시대」에 지금 「경상남북도」를 차지하였습니다.

[18]「남북조시대」는 언제입니까?

-반도(半島)에 신라와 만주(滿洲)에 발해(渤海)가 남북으로 맞서서 삼백년(三百年)동안 문화(文化)를 자랑하던 때입니다.

[19]「남북조시대」에는 대교를 어떻게 받들었습니까?

-신라에서는 신선도(神仙道)와 풍월도(風月道)란 별칭(別稱)이 있고, 화랑(花郞)을 길러서 해마다「산천순례(山川巡禮)」도 하였으며, 발해에서는「진종교(眞倧敎)」라 이름하고, 교리(敎理)의 연구가 많았습니다.

[20]「고려시대」에는 대교를 어떻게 받들었습니까?

-고려 오백년(五百年) 동안은「임검교(壬儉敎)」라 이름하고, 해마다 상달[上月 곧 十月]이면 팔관회(八關會)를 열게 되었으나 고종(高宗)때부터 교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21] 팔관회란 어떤 것입니까?

-임금과 백성이 한곳에 모여서 한얼께 제사를 드린 뒤에「여덟가지 금함」[八關]을 공포하고, 노래·춤과 온갖 재주로서 하루를 즐기는 것입니다.

[22]「여덟가지 금함」이란 무엇입니까?

-『사람을 죽이지 말며, 도적질 하지 말며, 거짓말 하지 말며, 술을 마시지 말며, 음탕하지 말며, 높은 평상에 앉지 말며, 비단옷을 입지 말며, 연극(演劇)만을 좋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3]「고려고종」때에 무슨 까닭으로 교문이 닫혔습니까?

-원(元)나라 임금「홀필렬(忽必烈)」이 고려백성에게「조선정신(朝鮮精神)」을 빼았고 오래도록 노예(奴隸)로 부리겠다는 야심(野心)에서 나온 것입니다.

[24] 원나라의 절대적 세력밑에서「고려사람」은 본정신을 잃었습니까?

-겉으로 보면 대교의 문이 닫히자, 고려백성은「얼빠진사람」[失神人] 같았지만 삼천 오백년 동안 뼈에 박힌 한배검의 은혜를 어찌 잊으며, 뇌(腦)에 뿌리내린「조선정신」이야 살아질수 없었을 것입니다.

[25] 대교의 문이 닫힐 때에 다른 종교는 없었습니까?

-아니지요. 고려때는 처음부터 대교와 불교(佛敎)의 두 교문에서 사회를 지도(指導)하였든바, 원나라의 정책으로 불교만을 숭상(崇尙)하였습니다.

[26] 불교의 내력(來歷)은 어떠합니까?

-불교는「석가(釋迦)」를 받들고,「본성품」을 깨닫는 것인데, 삼국시대에 중국으로부터 처음 들어왔고, 고려때는 임금의 스승도 적지 않았습니다.

[27] 원나라 정책으로서 불교를 숭상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원나라의 국교(國敎)인 라마교(喇□[*나마 마]敎)는「빠스바」[八思巴 西藏僧]의 새로 만든 것인바, 곧 불교의 지파(支派)인 까닭입니다.

[28] 원나라의 세력이 얼마나 오래 갔습니까?

-원나라는 일어난지 백년이 못되어 망(亡)하고, 고려도 이어 없어졌습니다.

[29] 대교의 문이 닫힌지 백년안에 다시 열렸습니까?

-아닙니다. 고려 뒤에 이조(李朝) 오백년(五百年)동안은 유교(儒敎)의 세력이 너무나 까다로와서 대교는 다시 일어날 기운(機運)을 얻지 못하였고, 불교도 심한 배척(排斥)을 받았습니다.

[30] 유교의 내력은 어떠합니까?

-유교는 공자(孔子)를 받들고 인륜(人倫)을 밝히는 것인데, 삼국시대 당(唐)나라의 유학생(遊學生)으로서 처음 들여왔고, 고려때는 상당한 학자(學者)도 많았습니다.

[31] 고려 말년(末年)부터 이조를 통하여 육백년(六百年)동안에 한배검을 받드는 아무런 예식도 없었습니까?

-아닙니다. 나라로서는 평양에 숭령전(崇靈殿)과 구월산에 삼성사(三聖祠)로 모셨고, 민간에서는 시월에 성조제(成造祭)·상산제(上山祭)와 삼월에 백산제(白山祭)를 드렸습니다.

[32] 숭령전의 내력과 예식은 어떠합니까?

-숭령전은 고려때부터 있었고,「조선시조단군지위(朝鮮始祖檀君之位)」란 위패(位牌)를 모셨으며, 고구려·동명성왕(東明聖王)을 배향(配享)하게 하였는데 해마다 봄·가을에 임금의 이름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33] 삼성사의 내력과 의식은 어떠했습니까?

-삼성사도 고려때부터 있었고,『한임(桓因)·한웅(桓雄)·한검(桓儉)』「세자리」의 위패를 모셨는데, 나라에서는 봄·가을로 백성들은 때때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34] 숭령전과 삼성사의 의식을 지금도 행합니까?

-「한일합병(韓日合倂)」하던 경술년(庚戌年)부터 제사를 못드렸고 더구나 삼성사는 재목으로 공매(公賣)되어 빈터만 남았습니다.

[35] 성조제는 어디서 어떻게 드리는 것입니까?

-이남각도[南鮮各道]에서 해마다 시월이면 새 곡식으로써 큰 시루에 떡을 찌고, 술·과일[酒果]을 겸하여 제사를 드리되 집집마다 주부(主婦)로서 행사(行祀)하는 것이오, 성조의 뜻은『나라집을 지으신』[成造家邦] 한배검의 은혜를 갚는다는 것입니다.

[36] 상산제는 어디서 어떻게 드리는 것입니까?

-백두산 동남인「이북지방」[北鮮地方]에서 해마다 시월이면 새 곡식의 수지로써 술과 떡을 만들때에 주부는 반드시 목욕(沐浴)하고 새옷을 입으며, 한배검께 제사를 드린 뒤에도 그 음식을 다 먹을때까지 조심(操心)하는 법입니다.

[37] 백산제는 어디서 어떻게 드리는 것입니까?

-백두산 서북인「동만지방(東滿地方)」에서 해마다 삼월 열 엿샛날(三月十六日)이면 조선·만주 두 겨레는 집집이 돼지를 잡든지 동리마다 소를 잡아서 백두산신(白頭山神)께 정성껏 제사를 드리는 것인데, 이것도 한배검을 받드는 예식입니다. *만주족(滿洲族)은 이 제사를「산씨루」라 하는데 곧「삼월십육일(三月十六日)」의 준말[약칭(略稱)]이다.

[38] 한배검을 받드는 마음으로 전해오는 풍속이 없습니까?

-아닙니다. 일반(一般)으로는 아기가 날때에「삼신(三神)」을 위함과, 어린「이」의 머리에「댕기(檀祈)」를 드리움과, 「웃옷」에는 반드시 흰「동정(東旌)」을 붙이는 풍속이 있습니다.

*삼신님을 대개「삼시랑님」이라 부르나, 이것은 잘 몰랐던 부녀들의 와칭(訛稱)인가 합니다.

[39] 아기가 날때에 삼신을 어떻게 위합니까?

-정한 볏짚[도초(稻草)] 한단을 산실(産室) 한편에 세우고『입쌀밥·미역국』[白米飯·甘藿湯]「세그릇」씩을 반에 차려 놓음은 아기의 명과 복(命福)을 비는 것이요, 또 금기(禁忌)하는 일도 있습니다.

[40] 금기는 어떻게 합니까?

-산실문밖에「검줄」[神索]을 치고「세칠」[三七日 즉 二十一日] 동안은 무슨 물건이나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또 부정(不精)한 사람이나 물건을 드리지 아니합니다.

[41]「검줄」은 어떻게 칩니까?

-「검줄」은 볏짚으로「왼새끼」[左淘索]를 꼬아서 그 가운데숱[木炭]과 고추(苦草)[생남시용(生男時用)]와 미역[생녀시용(生女時用)]을 드믄드믄 꽂은 것을 문위에 가로걸어 놓습니다.

[42] 댕기(檀旗)는 어떻게 드리웁니까?

-아기가 난지 사흘이면 목욕을 시키고 새옷을 입히며 머리털에「빛있는실」[色絲]로써 맺는 것이 곧 한배검께 명과 복을 비는 것이라 하며 댕기라고 부릅니다.

[43] 웃옷에 흰 동정을 붙이는 뜻이 무엇입니까?

-한배검께서 나리신「한울메」곧 백두산을 기념코져하여 우리 인간은 남녀·노소를 물론하고 웃옷의 깃[領]위에 반드시 흰 동정을 붙이는 것입니다.

[44]「배달시대」의 일이 생각될만한 풍속은 더 없습니까?

-아닙니다. 부루님과 팽우님과 고시님의 갸륵하신 공덕(功德)을 잊지 못하고 전해오는 풍속이 있습니다.

[45] 부루님의 공덕을 기념하는 풍속은 무엇입니까?

-정한 입쌀을 넣은「질그릇단지」[陶小缸]를「박달못」[檀釘]위에 모신 것이「부루단지」인데, 이것은 부루님이 어지시고 복이 많으시다하여 재신(財神)으로 위한 것입니다.

[46] 팽우님의 공덕을 기념하는 풍속은 무엇입니까?

-백두산 남북으로 뻗친「큰고개」[大嶺]에는 반드시 선왕당(仙王堂)이나 국사당(國師堂)이 있고, 거기에「조약돌」이 모이며, 베오리가 달린 것은 곧 팽우님의 산천을 정하신 기념입니다.

[47] 고시님의 공덕을 기념하는 풍속은 무엇입니까?

-고시님의 농사 가르치신 공덕을 잊지 못하는 농군(農軍)들은「밭머리」에서 술·밥[酒飯]을 먹을때마다 한잔술·한술밥을 떠던지면서「고시네」를 부릅니다.

[48] 대교의 문을 언제 누가 다시 열었습니까?

-개천 사천 삼백 예순 여섯 해인 기유(己酉) 정월(正月) 보름날[十五日]에「홍암대종사(弘巖大宗師)」께서 대종교(大倧敎)를 다시 선포하시고 교주(敎主)가 되시니, 이날이 곧 중광절(重光節)입니다.

[49]「홍암대종사」는 어떤 어른이십니까?

-대종사의 성명은 나철(羅喆)이시오, 도호(道號)는 홍암(弘巖)이시며,「전남낙안(全南樂安)」사람이신데, 대교가 중광되는날 서울에서 오대종지(五大宗旨)를 선포하시고, 첫 교주가 되신 어른입니다.

[50] 대종교로 이름한 뜻은 무엇입니까?

-대(大)의 뜻은 천(天)과 같고 종(倧)의 뜻은 신인(神人)이므로 대종교는 곧 천신교(天神敎)라는 뜻이며 옛 명칭은 천종교(天倧敎)입니다.

[51] 교주에게 특별히 부르는 이름이 없습니까?

-교주의「벼슬이름」은 도사교(都司敎)인데 공문(公文)에만 쓰이고, 교우(敎友)들이 도형(道兄)으로 부르며, 또 교주의 있는 집을 경각(經閣)이라 합니다.

[52] 오대종지란 무슨 뜻입니까?

-「첫째 공경으로 한얼을 받들 것, 둘째 정성으로 성품·심신을 닦을 것, 셋째 사랑으로 겨레를 화합할 것, 넷째 고요한 가운데 행복을 구할 것, 다섯째 부지런히 살림에 힘 쓸 것」입니다.

[53] 대종교의 규칙(規則)은 어떻습니까?

-지금 쓰이는「홍범규제(弘範規制)」는「홍암대종사」께서 만드신 홍범과「무원종사(茂園宗師)」께서 공포하신 규범을 합한 것인데,「단애도형(檀崖道兄)」때에 다시 수정(修訂)한 것입니다.

[54]「무원종사」는 어떤 어른이십니까?

-종사의 성명은 김헌(金獻)이시고, 도호는 무원(茂園)이시며 서울 사람이신데, 일찍「신단실기(神檀實記)」를 지으시고, 둘째 교주가 되신 어른입니다.

[55]「단애도형」은 누구십니까?

-「단애도형」의 성명은 윤세복(尹世復)이시오,「경남밀양(慶南密陽)」사람이신데 무원종사의 남기신 부탁을 받아 셋째 교주가 되신 어른입니다.

[56]「신단실기」의 내용(內容)은 어떠합니까?

-「신단실기」에는 한배검의 사적(事蹟)을 쓰고 다음에「한겨레」[한족(桓族)]의 분파를 적고 끝에는 한배검을 추모(追慕)하는 글과 노래를 많이 기록한 것입니다.

[57]「홍암대종사」께서는 지으신 책이 없습니까?

-아닙니다.「신리대전(神理大全)」을 지으셨으니 그 내용은『한얼자리·한얼도리·한얼사람·한얼교화』를 간략하고도 밝게 말씀하신 것인데, 또「백포철형(白圃哲兄)」께서 주석(註釋)하셨습니다.

[58]「백포철형」은 어떤 어른이십니까?

-철형의 성명은 서일(徐一)이시오, 도호는 백포이시며,「함북경원(咸北慶源)」사람이신데, 일찍「회삼경(會三經)」을 지으시고,「종사철형(宗師哲兄)」의 교호(敎號)를 받으신 어른입니다.

[59] 회삼경의 내용은 어떠합니까?

-회삼경의 내용은 대종교의「참진리」인『셋참함으로서 한얼에 돌아간다』는 뜻을 풀되 과학적으로 증명하신 것입니다.

[60] 대종교에서 받드는 예식은 무엇입니까?

-해마다「정조참알례(正朝參謁禮)」와 날마다「천전조배식(天殿早拜式)」은 천진전(天眞殿)에서 받들고, 또 경일(敬日)[매일요일(每日曜日)]에 경배식(敬拜式)과 경절(慶節)[사대기념(四大紀念)]에 경하식(慶賀式)은 강당에서 행합니다.

[61] 천진전은 어디서 어떻게 모셨습니까?

-천진전은 곧 한배검의 영진(影眞)을 모신 집인데, 교당은 물론이요, 집집이 모실수 있으며, 영진은 곧 신라때 솔거(率居)님이 그리신 신상(神像)을 다시 박은 것입니다.

[62] 경절은 어느대에 있습니까?

-한배검께서 나리신 개천절(開天節)[시월삼일(十月三日)]과 또 오르신 어천절(御天節)[삼월십오일(三月十五日)]과 대교의 문이 다시 열린 중광절(重光節)[정월십오일(正月十五日)]과 홍암대종사께서 조천(朝天)하신 가경절(嘉慶節)[팔월십오일(八月十五日)]등 네 번의 경절입니다.

[63] 홍암대종사께서 조천하신 날을 어찌 경절로 지킵니까?

-대교가 중광된지 여덟해인 병진(丙辰) 팔월 보름날 대종사는 삼성사에서 한얼께 제사를 올리시고 고요히 조천, 돌아가셨는데 이것은 대종사께서 우리 인간의 죄악을 대신 속죄(代贖)하신 것이므로 어천절을 비껴서 경하(慶賀)하는 것입니다.

[64] 한얼께 친하려면 정성껏 읽어야 한다는 각사는 무엇입니까?

-각사는 한배검을 받드는「이」로서 항상 맘속으로 비는 말이니 곧『가마히 위에 계시사 한으로 듣고 보시며 낳아 살리시고 늘 나려주소서』[신령재상(神靈在上) 천시천청(天視天聽) 생아활아(生我活我) 만만세강충(萬萬世降衷)]입니다.

[65] 한배검의 갸륵하신 신공성덕을 기리는 노래가 없습니까?

-왜요! 때때로 부르는 노래가 많지만 그 가운데「얼노래」[神歌]와「한풍류」[天樂]는 어떤 예식에든지 두루 쓰이는 것입니다.

[66]「얼노래」와「한풍류」는 누가 지었습니까?

-「얼노래」는 사절인데 옛날 고구려때에 쓰던 군가(軍歌)를 번역한 것이요,「한풍류」는 삼장인데 홍암대종사께서 지으신 것입니다.

[67] 한배검을 달리 부르는 이름이 없습니까?

-우리 말로는『한배·한배님·한배웅·한배검』이오, 한문으로는『단군(檀君)·단제(檀帝)·대황조(大皇祖)·대황신(天祖神)』이시니, 모두 여덟가지 이름이 있습니다.

[68] 대종교의 기관(機關)은 어떻게 구성되었습니까?

-경각(經閣)밑에 총본사(總本司)가 있고, 그 밑에 「각도본사(各道本司)」가 있고, 또 그 밑에 여러 시교당(施敎堂)이 있습니다.

[69] 각 기관의 직제(職制)는 어떻게 됩니까?

-경각에는 봉선(奉宣)·찬선(贊宣)이 있고, 총본사에는 전리(典理)·전범(典範)·전강(典講)과 찬리(贊理)·찬범(贊範)·찬강(贊講)이 있고, 각도 본사에는 전리·선리(宣理)·선범(宣範)·선강(宣講)·찬리·순교원(巡敎員)이 있고, 시교당에는 전무(典務)·찬무(贊務)·시교원(施敎員)이 있습니다.

[70] 대종교의 교기(敎旗)는 어떤 것입니까?

-대종교를 상징하는 천기(天旗)의 모양은 흰바탕 위에 밖은 세모로 둥글게 푸른 빛이요, 속에는 네모 반듯하게 누른 빛이요, 복판에는 바른 붉은 빛이니, 곧 한울 땅 사람을 뜻합니다.

[71] 대종교를 믿는「이」의 자격(資格)을 주는 의식(儀式)은 어떤 것입니까?

-대종교를 받들어 입교 여섯달[六個月]이면 시험(試驗)으로 뽑아서「영계(靈戒)」를 주고, 차츰차츰 교질(敎秩)을 주는데 참교(參敎)·지교(知敎)·상교(尙敎)·정교(正敎)·사교(司敎)의 다섯계급의 성직이 있습니다.

[72] 대종교를 위하여 교인이 의무적으로 바쳐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대종교를 믿는「이」들이 하루 세 번 식사때마다 먹는 쌀 한숫가락씩 떠모아서 그 기관에 바치는 것을 천곡(天穀)이라 하고, 또 때와 일에 따라서 특별히 성금(誠金)을 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