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대종교마당삼문일답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09-05-08
이메일 daejonggyo@naver.com
제목 [교리(종리)] [종리문답] 한배 이야기
내용  

[1] 느낌을 멈춤과 숨쉼을 고르게함과 부딪침을 금함의「세법」은 누가 낸 것입니까?

-한옛날「한배검」[天祖神]께서 「참이치」를 가르치실 때 말씀하여주신 것입니다.

[2]「한배검」은 누구십니까?

-「한배검」은 우리「한아배」[天父]도 되시고, 우리「한스승」[天師]도 되시고, 우리「한임금」[天君]도 되시는 어른입니다.

[3]「한배검」과 한얼의 관계는 어떠하십니까?

-우리「한배검」은 본래 한얼로서 사람이 되시어「한울인」[天符印]세개를 간직하시고 인간세상에 내려오셨습니다.

[4]「한배검」께서 인간에 나리실 때 한울에는 한얼의 자리가 비었습니까?

-얼굴이 없으신 한얼은「본자리」[本位]에 계시면서 천만억의 몸으로 변화하실수도 있습니다.

[5]「한배검」께서 나리실 때에「보통사람」과 같이「셋참함」(성품,목숨,정기)을 얻으셨습니까?

-아니지요!「세가지의 큼」(덕·슬기·힘)을 가지시고 나리셨으므로「한얼사람」[神人]이라고 부릅니다.

[6] 그러면「한배검」의 권능(權能)이 한얼과 다름없습니까?

-한얼에서「세검」(조화·교화·치화)의 자리나, 인간에서「세마루」(아버님·스승님,·임금님)의 자리나 한가지입니다.

[7]「한배검」께서 어느때에 나리셨습니까?

-지금[칠삼무진(七三戊辰)]부터 사천 삼백 여든 다섯해앞『첫갑자시월 초사흗날』[태원갑자시월삼일(太元甲子十月三日)]에 나리셨습니다.

[8]「한배검」께서 나리셨던 곳이 어디입니까?

-「한울메」[천산(天山)]위에 나리셨는데 그 이름은「강역고(彊域考)」에『불함(不咸)·개마(蓋馬)·도태(徒太)·백산(白山)·백두(白頭)·태백(太白)·장백(長白)·껄민상견(歌爾民商堅)』의 여덟가지로 적혀있습니다. *「껄민상견」은 만주말에 제단(祭壇)이란 말이다.

[9]「한배검」께서 인간에 나리신 뜻이 어디 있습니까?

-한옛날에 인간이 늘어갈수록 나쁜 버릇이 많음을 근심하사『인간을 크게 유익케 하려』[弘益人間]하심입니다.

[10]「한배검」께서 나리신 뒤에 인간은 어찌 되었습니까?

-「한울메」를 복판으로하여「아홉겨레」[九族]가「삼천단부(三千團部)」로 모였습니다.

[11]「아홉겨레」란 무엇입니까?

-「한울메」의 남북 수만리에 흐트러져 사는 인간들이『황(黃)·백(白)·현(玄)·적(赤)·람(藍)·양(陽)·간(干)·방(方)·견(□[*밭도랑 견])』의 아홉으로 나누인 겨레입니다. *람족은 풍족으로 적은 책이 있습니다.

[12]「아홉겨레」가「삼천단부」로 모인 뒤에는 무엇을 하였습니까?

-「한배검」께서 한얼의 도리로써 종교(倧敎)를 베푸시고, 친히 가르치심을 받았습니다.

[13]「한배검」께서 가르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한울[천(天)]과 한얼[신(神)]과「한울집」[天宮]과 누리[世界]와「참이치」[眞理]의「다섯가르침」[五訓]을 말씀하셨는데「삼일신고(三一神誥)」란 책이 있습니다.

[14]「삼일신고」는「한배검」께서 지으신 책입니까?

-사관(史官) 신지(神誌)님이「옛글」[古文]로써 돌에 새겼던 것을 고구려(高句麗)때에 한문(漢文)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15] 돌에 새긴 옛글도 전해 옵니까?

-돌에 새긴 옛글과 나무에 새긴「은문(殷文)」은 다 병화(兵火)에 없어지고 한문만이 남았습니다.

[16] 한문 책은 어떻게 전해 왔습니까?

-한문책도 발해문왕(渤海文王)이 일찍이 보본단(報本壇) 돌집속에 소장하였던 것이 대교(大敎)가 중광(重光)할 때 다시 나왔습니다.

[17]「다섯가르침」으로 말씀하신 것 뿐입니까?

-아닙니다.「다섯일」[五事]을 주장하시어 다스리시되, 검소와 부지런함을 몸소 가르치셨습니다.

[18]「다섯일」은 무엇입니까?

-곡식과 명령과 질병과 형벌과 선악의 다섯가지를 주관하셨으므로 사람들이 편안히 살게 되었습니다.

[19] 검소와 부지런함은 어떻게 가르치셨습니까?

-「쑥대정자」[蓬亭]와「버들대궐」[柳闕]에 계셨었고, 소를 타고 다니시며, 풀을 베어서 새끼도 꼬았습니다.

[20] 그때의 사회 정도는 어떠하였습니까?

-음식과 의복과 거처의 제도가 차츰 짜이고 남녀와 부자와 군신의 윤리도 또한 밝아졌습니다.

[21]「한배검」께서 나리시기 전에는 그 정도도 못되었습니까?

-풀옷을 입고,「나무열매」를 따먹으며, 여름엔 둥지를 치고, 겨울엔 굴을 찾는 정도로써 무슨 제도나 윤리도 몰랐을 것입니다.

[22] 그럼「한배검」께서 나리신 뒤에야 우리 인간이 비로소「사람다움」을 얻은 것 아닙니까?

-그러기에「한배검」께서 나리심은 우리 인간에 한울이 새로 열린 것이라하여「개천기원(開天紀元)」을 쓰는 것입니다.

[23]「한배검」께서 온갖 일들을 혼자 살피셨습니까?

-「한배검」을 도우신 어른은「세선관」[三僊]과「네신장」[四靈]이 계셨습니다.

[24]「세선관」은 누구십니까?

-원보(元輔) 팽우(彭虞)님과 사관(史官) 신지(神誌)님과 농관(農官) 고시(高失)님이「세선관」입니다.

[25] 팽우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팽우님은 땅의 경계안에 산천(山川)의 이름을 정하시고, 또 큰물(洪水)이 저서 평양(平壤)이 잠기거늘, 곧 바다로 빠져나가게하여 백성을 편안케 하셨습니다.

[26] 신지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신지님은 글을 만들어「한배검」의 교화를 널리 펴시고, 또 <비사(秘詞)>와 <진단도(震檀圖)>를 지어서 전하셨습니다.

[27] 고시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고시님은 농사를 가르쳐서 의복 및 식생활을 풍족토록 하시고, 또 불로써 음식을 익히게 하셨습니다.

[28]「네신장」은 누구십니까?

-풍백(風伯) 지제(持提)님과 우사(雨師) 옥저(沃沮)님과 뇌공(雷公) 숙신(肅愼)님과 운사(雲師) 여수기(余守己)님이「네신장」입니다.

[29] 지제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지제님은「한배검」의 명령을 때때로 전하시고, 또 노래와 춤을 가르치셨습니다.

[30] 옥저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옥저님은 질병을 미리 알아서 빨리 낫게 하시고, 돌로써 도끼와 창을 만들으셨습니다.

[31] 숙신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숙신님은 죄지은 사람을 다스리시고, 또 활을 만들어 이름난 무기(武器)가 되었습니다.

[32] 여수기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여수기님은 인간의 착함과 악함을 살피시고, 또 백성의 살림을 도와주셨습니다.

[33]「한배검」께서 몇해동안이나 가르치셨습니까?

-개천(開天)한지 일백 스물 다섯 해동안을「신시시대(神市時代)」라 합니다.

[34]「신시시대」란 무엇입니까?

-「한배검」의 교화에 돌아옴이 저자[市]와 같음을 신시라 하고, 사업의 이룸을 표하여 시간의 토막을 낸 것이 시대랍니다.

[35]「신시시대」의 뒤에는 무슨 시대입니까?

-배달(倍達)시대인데,「삼천단부」에 사는「아홉겨레」가 합하여 나라 살림을 하였습니다.

[36] 배달의 뜻은 무엇입니까?

-「옛말」에「배」는「한아배」[조(祖)]요「달」[月]은 빛나는 것인데,「배달」이 곧 우리겨레와 나라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38]「배달나라」를 어느때에 세웠습니까?

-개천 일백 스물 다섯 해인 무진(戊辰) 시월 초사흗날인데, 지금[칠삼무진(七三戊辰)]부터 사천 이백 예순 한해 앞입니다.

[38]「배달나라」의 첫 임금은 누구십니까?

-「삼천단부」의 많은 무리가「한배검」을 높이어서 임금이 되시었는 바 뒷날에 단군으로 부릅니다.

[39] 단군이라 함은 무슨 뜻입니까?

-「배달나라」임금이란 뜻인데,「한배검」의 뒤를 이은 임금들로 천년(千年)동안은 단군으로 불렀습니다.

[40]「배달나라」의 서울[國都]은 어디에 있습니까?

-처음에는「한울메」백두산에 정하였다가 스물 세해인 경인(庚寅)년에 평양으로 옮기고, 나라 이름을 조선(朝鮮)이라 하였습니다.

[41] 조선이라 함은 무슨 뜻입니까?

-이것도 뒷사람의 번역인데『사람의 비롯은 한아배요, 날의 비롯은 아침이니 빛나고 빛난 것이라』하였은즉 곧 배달의 뜻입니다.

[42]「한배검」을 도와서「나라일」에 힘쓰신「이」는 오직「세선관」과「네신장」이 있을 뿐입니까?

-황실(皇室)에도 여러분이 계시어 나라 일에 많은 힘을 썼습니다.

[43] 황실이란 것은 무엇입니까?

-임금의 집을 황실이라 하는데, 곧「한배검」의 아내이신「비서갑신후(匪西岬神后)」와 아드님 네분이 계셨습니다.

[44]「한배검」의 아드님 네분은 누구십니까?

-태자(太子)인 부루(扶婁)님과 또 부소(扶蘇)·부우(扶虞)·부여(扶女)님들입니다.

[45]「비서갑신후」께서는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신후께서는 친히 누에를 치셨으며, 백성에게 길삼하는 법을 권하셨습니다.

[46] 부루님은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부루님은 질그릇 굽는 법을 가르치시어 백성의 살림에 많은 편리(便利)를 주셨습니다.

[47] 부소님의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부소님은 온갖 약(藥)을 맛보아서 많은 병을 낫게 하셨습니다.

[48] 부우님의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부우님은 사냥하는 일을 맡아서 사나운 짐승의 해가 없게 하셨습니다.

[49] 부여님의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부여님은 인간의 습관을 살피시어 예절(禮節)을 마련하시되 풍속(風俗)이 두텁게 하셨습니다.

[50]「배달나라」의 강역(彊域)은 어찌 되었습니까?

-「한울메」곧 백두산을 가운데에 두고 동서(東西)가 오천리(五千里)요, 남북(南北)이 만여리(萬餘里)였습니다.

[51] 동쪽 지경[界]은 어디까지입니까?

-「달달해협」으로부터 창해(滄海)를 다하였다는데,「달달해협」은 지금「하바로스크」[俄令沿海洲]며, 창해는 곧 동해(東海)입니다.

[52] 서쪽 경계는 어디까지입니까?

-흥안령(興安嶺)을 끼고 사막(沙漠)에 뻗혔다는데, 흥안령은 만주흑룡강성(滿洲黑龍江省)에 있고 사막은 지금 내몽고(內蒙古)경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53] 남쪽경계는 어디까지입니까?

-탐라(耽羅)를 거쳐서 영해(瀛海)에 이르렀다는데, 탐라는 곧 제주도(濟州道)요, 영해는 지금 동지나해(東支那海)입니다.

[54] 북쪽지경은 어디까지입니까?

-흑수(黑水)를 넘어서 소해(小海)까지라는데, 흑수는 곧 흑룡강(黑龍江)이요, 소해는 지금「아무울」[俄領黑龍州] 북편에 있습니다.

[55] 그러면 황해(黃海)와 발해(渤海)는 어찌 되었습니까?

-황해와 발해는 물론 나라 안에 있는 내해(內海)입니다.

[56] 홍수가 나서 평양이 잠기던 때는 언제입니까?

-서울을 평양에 옮긴지 설흔 세해인 임술(壬戌)인데, 그때에 서울을 당장경(唐臧京)으로 다시 옮겼습니다.

[57] 당장경은 어디입니까?

-당장경은 황해도구월산(黃海道九月山)밑 장장평(莊莊坪)인데「한배검」께서 이곳에 서른 아홉 해를 계셨습니다.

[58] 팽우님께서 큰물을 어떻게 빼내셨습니까?

-북녘은 흑수[黑龍江]로부터 남녘은 우수(牛首)[지금의 春川]에까지 양편(兩便)에 물길을 내어서 동해(東海)와 서해(西海)로 빠지게 하셨습니다.

[59] 그때에 중국(中國)에서는 큰물이 나지 않았습니까?

-중국에서는 물난리를 아홉해를 겪다가 필경은「우리나라」에 사람을 보내서 물다스리는 법을 배워 갔습니다.

*하우(夏禹)가 청구(靑邱)에 사람을 보내서 자허상인(紫虛上人)에게 오행치수법(五行治水法)을 배웠다[抱朴子]. 하우가 회계산(會稽山)에서 창수사자(蒼水使者)에서 황제중경(黃帝中經)을 받아서 큰물을 다스렸다[吳越春秋]. 라는 두가지 말이 있습니다.

[60]「이웃나라」와는 어떻게 사귀었습니까?

-「이웃나라」로는 오직 하나뿐인 중국의 당우(唐虞) 시대에 맞서서「나라의 경계」를 감정(勘定)한 일이 있습니다.

[61]「당우시대」란 무엇입니까?

-중국의 옛 당(唐)나라 요(堯)임금과 우(虞)나라 순(舜)임금이「임금자리」를 서로 사양하던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62] 고조선과 당과 우의 사이에 땅으로 인하여 다툰일이 있었습니까?

-우나라 순임금은 본래「조선사람」으로서 중국의 임금이 된뒤에 조선의 서쪽(西偏) 땅을 점령(占領)하여 유주(幽州)·영주(營州)의「두고을」을 두었음으로 두나라 사이에 말다툼이 있었습니다.

[63]「나라의 경계」[國界]는 어떻게 감정되었습니까?

-「태자부루」님이 우나라 대신(大臣) 하우와 도산(塗山)에 모여서 담판(談判)하고 유주·영주 두고을을 다시 되찾았습니다.

[64] 도산은 어떤 땅이며, 그때는 언제입니까?

-도산은 지금 중국 하북성(河北省)에 있고, 때는 서울을 당장경으로 옮긴지 열 세해인 갑술(甲戌)입니다.

[65]「나라사람」이 받들어 행하는 큰 예식이 없었습니까?

-왜요!「상달상날」곧 시월삼일(十月三日)에는 의례 경축(慶祝)하려니와, 근본을 갚는 뜻으로 한얼께 제사(祭祀)를 드리는 큰 예식이 있었습니다.

[66] 한얼께 제사 드리는 예식을 어느때 어디서 행하였습니까?

-해마다 상달이면「한배검」께서「삼천단부」의 대표들을 제천단(祭天檀) 밑에 모이게 하시고 친히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67] 제천단은 어디 있었습니까?

-지금 강화(江華)­마니산(摩尼山)위에 돌로 쌓은 것이 두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68] 아! 제천단이 지금도 있습니까?

-반만년(半萬年)동안 비·바람을 무릅쓰고 있는 거룩한 자취를 지금도 볼수 있습니다.

[69] 그러면 제천단의 모양은 어떻게 생겼습니까?

-모두 돌로 두층을 쌓았는데 아래층은 둥근 둘레가 예순자[六十尺]이오, 윗층은 네모가 반듯하며 한변[一邊]이「여섯자·여섯치」[六尺六寸]이며, 높이는 모두「열일곱자」[十七尺]입니다.

[70]「한배검」의 남기신 자취가 제천단 이외에는 더 없습니까?

-평양에 왕검성(王儉城)과 강화에 삼랑성(三郞城)의 남기신 터전을 입으로 전하고 손으로 가르칠 뿐입니다.

[71] 한배검께서 몇해동안이나 인간에 계셨습니까?

- 인간 세상에 오신지 이백 열 일곱 해이오, 임금이 되신 지 아흔 세해인 경자(庚子) 3월 보름날에 다시 한울에 오르셨습니다.

[72] 한배검께서 한울로 오르시던 곳은 어느 곳입니까?

지금 구월산­사황봉(思皇峯) 위에 어천대(御天臺)가 있어서 옛일을 증명(證明)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