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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날짜 2017-12-24
제목 개천 4474년 12월 17일 제 74-51호
내용 “ 한얼님은 지극히 공의로우시다 ” - 최윤수 삼일원장 - 우리 대교는 주체성 있는 진종대도를 가르치고 단군 한배검 시대부터 그 뿌리가 전해져온 고유종교이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고 친일하지 않아서 북한에 좋은 이미지를 남기고 있다. 그래서 남북관계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인들의 모임에 초청받지 못하는 것은 교세가 약하기 때문이다. 20년 전만해도 청와대에 초청되었었는데. 우리 대교의 교세가 이렇게 약해진 것은 우리 대교인들이 한얼님에 대한 신앙이 부족하고 또 행동하고 일처리 할 때 의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침 반성하는 때인 연말연시인 이때에 다른 것을 다 재치고 우리 모두 이에 대해 뉘우치고 보다 의롭게 행해야겠다. 경전은 한얼님께서는 지공무사 즉 지극히 공의로워 사사로움이 없으시다고 했다. 우리가 의롭게 행하면 지공무사하신 한얼님께서 우리의 의로움을 보고 그에 응답하시고 의롭지 못 하면 우리를 벌하신다. 경전 말씀처럼 우리가 하는 일을 신령이 다 보고 한얼님께 아신다. 사람은 사람의 마음을 모르지만 한얼님께서는 우리가 유리창 너머로 방을 다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 마음을 다 보고 계신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하면서 곧잘 이 사실을 잊어버리지만 항상 이를 기억하고 한얼님을 공경하고 의롭게 살아야 한다. 2주 전에 칠곡의 김금순 전무가 천대궁수도원을 개원해서 그 개원식에 다녀왔다. 그 전무가 어떻게 수도원을 개원하게 되었는지 말씀드리고자 한다. 그 전무는 대교를 봉교하기 전, 대교를 모를 때 지성으로 기도생활을 했다. 그런데 어느날 꿈에 단군 한배검이 현몽하시어 “금순아, 왜 나를 찾아오지 않느냐” 라고 하니까 한배검이 누군지도 모르는 전무가 “누구시냐”고 물었다. 한배검께서 “나는 단군 할아버지이니 나를 빨리 찾아와 나를 모시어라” 하고 전무에게 전화번호를 보여주셨다. 전무는 꿈을 깬 후 그 전화번호를 적었다가 대종교를 찾아와 한배검 앞에서 많이 울고 봉교하고 종리대학까지 마치고 계속 봉교하여 수도원까지 개원하게 되었다. 이렇듯 한배검께서는 영험하시고 한얼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것이다. 이를 잊지 말고 항상 경전말씀대로 살아야 하고, 또 우리가 성품대로 행하면 한얼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걱정없이 살아야 한다. 의로움은 남과 같이 일할 때나 아니면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에서 행하는 일에서 나타난다. 철학은 사유 즉 생각이 중심이기 때문에 철학할 때 첫 번째 되는 덕목은 참된 이치 즉 진리이다. 즉 어떤 것이 참된 진리인지를 생각하는 것이 철학이고 이는 행동으로 아직 나타나지 않아도 된다. 참되다고 생각만 하고 있어도 행동으로 실행하지 않으면 의롭다는 소리는 듣지 못한다. 의로움은 행동을 하면서 나타나 다른 사람들도 알아야 의롭다고 한다. 그래서 사회에서 여러사람들이 일하거나 행동할 때 그 행동이 의로운지 공평한지를 보는 법과 제도의 제 일 덕목은 의로움이 된다. 우리 경전도 의로움은 부응하는 기라고 해서 의로움에 행동하는 기가 수반됨을 가르친다. 부응한다는 것은 어떤 일에 부응하는 것이고 사람이 행동하려면 부응해서 기를 세우고 행동하는 것이다. 공동체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모든 일을 의로움에 입각해서 정당하게 처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부당하게 처리하면 도리가 뒤집혀서 인륜이 없어진다. 인륜이 없어지면 사람답지 못한 것이므로,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의 참성품은 착하지만 일을 할 때 자기 생각에 집착해서 또는 일부 사람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불의가 일어날 수 있다. 단체에서 불의가 발생하면 반드시 사람들이 그 잘못됨을 말하고 그 잘못은 시정되게 된다. 그 큰 나라에서도 정부가 의로움을 잃은 권력 기구가 되면 일반 민중의 소리에 의해 무너진다. 왕에 의해 다스려지는 절대권력의 전제주의 시절에도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이 있어왔다. 불의는 잠시 동안은 유효하지만 오래되면 수정되게 되어 있다. 대중들의 의로운 마음은 들에 돋는 푸른 풀과 같아서 때가 되면 돋아나와 온 천지가 푸르게 된다. 이것이 한얼님의 이치이고 자연의 이법이므로 누구도 막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 개혁이 처음에는 멀고 어렵게 느껴져도 때가 되면 대중들의 마음들이 나타나 함성이 되고 또 촛불이 되어 대중과 유리된 세력들을 물리친다. 이것이 한얼님의 일이고 그 일은 빠르게 부는 태풍과 같고 거대한 파도와 같아서 거칠 것이 없으며 누구도 막을 수가 없다. 이 의로움은 순수한 마음으로 봉교하는 데에서 나온다. 경전에 “신의는 하늘이치에 꼭 합하며 사람일이 반드시 이루게 한다”라고 했다. 그 신의의 뿌리되는 덕목이 의로움이다. 의로움은 그래서 하늘이치, 즉 한얼님의 이치대로 행해야 된다. 순수한 마음으로 봉교하면 당연히 한얼님 이치를 따르게 된다. 옳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알아내고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때에는 여러 가지 걱정이 앞서기 마련이다. 생각을 할 때는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위험성이 없지만, 그 생각을 행동으로 나타내야 진실한 의로움이 되는 것이다. 의롭게 행동하려 해도 사람인지라 잘못될 경우도 머릿속에 떠올라 뒷일이 걱정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의로움을 행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 의로움에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우리의 참 성품이고 또한 우리를 든든하게 지켜주시는 한얼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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