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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날짜 2017-12-05
제목 개천 4474년 12월 03일 제 74-49호
내용 “ 소통해야 산다 ” - 최윤수 삼일원장 - 소통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네 삶은 소통이라 할 수 있다. 몸이 생존하려면 무조건 음식을 먹어서 에너지를 흡수하기만 하면 될 것 같지만 어디 그런가. 배설도 잘 해서 신진대사가 잘 돼야 건강하고 몸이 잘 돌아간다. 생명체가 살아 있다는 것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고 움직임은 한 생명체가 자기 밖의 세상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바깥 것을 취하고 안의 것을 배출하고 또 활동한다. 죽은 것은 외부 사물을 들여서 신진대사도 못하고 아무런 반응을 하지 못한다. 돌이나 쇠가 아무리 강해도 살아있지 않기 때문에 비바람에 풍화되어 길게 보면 닳아지고 녹슬고 한다. 바위에 계란치기라는 말도 있지만 계란이 부화해서 병아리가 되고 닭이 되면 닭은 그 바위 위로 올라타 바위를 이긴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살아있으면 이렇게 물질의 신진대사도 하고 또한 외부 것을 보고 듣고 하며 인식하고 말하고 행동하면서 반응하는 소통을 해야 산다. 다만 소통을 적극적으로 하느냐 아니면 소극적으로 하느냐 소통을 잘 하느냐 못 하느냐 이 문제일 뿐이다. 사람 사이에서도 소통을 해야 살 수 있다. 공동체나 조직에서도 소통을 통해서 서로 간에 동질성을 가지게 되고 협동하고 단결할 수 있어서 그 조직이 살아 움직이며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또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소통해야 친구가 생기고 외롭지 않다. 사람은 특히 성품을 온전히 받아서 소통을 잘 한다. 우선 우리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도 일종의 소통이다. 머릿속으로 상상을 하면서 하늘도 그려보고 땅도 그려보고 오늘 만났던 사람들도 생각해보고 그 사람이 내가 말했던 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등을 생각하는 것도 소통이다. 그러면서 상상한 것들 사이의 관계도 생각해보고 이치도 생각해보고 하는 것은 실제는 아니지만 머릿속으로 소통을 해보는 것이다. 이치에 통하고 성품에 통하면 하느님과도 통하고 누리와도 통하고 다른 사람의 성품에도 통하는 것이므로 온전하게 소통하는 것이다.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일차적으로 남을 배려하는 성품이라 한다. 내가 겸손하고 상대방을 배려해야 상대방도 나를 존중해주고 내가 무슨 일을 하거나 말을 할 때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들어준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높은 곳으로는 물이 흘러가지 않듯이 내가 스스로 높이 있어 교만해서 남을 배려하지 않고 있다면 상대방이 나를 돌아서 피해간다. 소통하고자 말을 할 때, 말은 내가 하지만 소통이 되려면 듣는 사람이 들어야 한다. 내가 열심히 말을 하는데 듣는 이가 들을 마음이 없으면 듣지 않고 소통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소통은 듣는 사람 중심이 된다. 말하는 이는 이미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고 듣는이가 그 말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소통의 관건이다. 그런데 말을 잘 해도 말하는 태도가 불손하면 상대방은 내 말을 듣지 않는다. 배려가 없기 때문이다. 겸손하면서도 역지사지하여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며 말해야 하고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주지 못하는가를 걱정해야 한다. 또, 소통은 오래 가야 한다. 기껏 소통했는데 금방 끝나면 소통 안 한 것보다는 낫지만 큰 효과가 없다. 남을 배려하고 신뢰가 있으면 소통이 오래 간다. 내가 상대방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에게 말을 하지도 않고 소통하고 싶지도 않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상대방이 나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소통을 잘 하려면 상대방이나 나나 평등하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바람이 불어 어디든 갈 수 있는 이유는 공간이 허허공공하여 굴곡이 없이 다 평등하기 때문이다. 사람도 평등하지 않다고 하면 벽이 생겨 소통이 단절된다. 삼일신고 가르침처럼 모든 사람은 성명정을 다 같이 받았으므로 평등한 것이다. 그런데 자기가 뭐 좀 더 가졌다고 상대방과 인격적으로 차등을 두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 위배되는 것이다. 다 평등하다고 하면 위아래도 없어서 일이 안 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미 200년도 넘는 옛날에 사람들은 만인은 평등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민주주의가 발달했다. 만인은 평등해서 투표권도 다 같이 동등하게 주어진다. 다만 사회적으로 일을 할 때는 각자의 직분에 맞는 역할을 하니 그 역할이 존중되는 것이다. 소통을 잘 하던 링컨이 민주주의에 투철해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말을 했다. 우리 대교도 교인들 하나하나가 주인이니 대교는 교인의, 교인에 의한, 교인을 위한 대교이고 교직자들은 교인들 위에서 군림하지 말고 교인들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서로 평등하면 상대방의 눈을 서로 쳐다볼 수가 있다. 눈은 마음의 창이어서 눈의 방향에 따라 상대방이 나에게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있다. 그래서 눈을 바라보지 않으면 마음을 회피하는 것이 된다. 하느님과 나도 소통해야 한다. 참전계경을 보면 하느님과의 소통은 정성으로 하는 것이다. 정성은 속마음의 발로이고 그 속마음을 온몸에 전달하는 피의 성질이 지키는 바이다. 한얼님을 정성스럽게 공경하면 한얼님이 초목에 비이슬 서리 눈을 내려 살리시는 것처럼 사람에게 정기를 내리신다. 이것이 한얼님과 내가 소통하는 가장 기본이다. 하느님께 내가 원도하고 기도를 해도 하느님을 존중하고 하느님이 원하는 대로 해야 하느님이 들어주신다. 성품을 무시하고 자기 성질대로 하느님께 무례하면 공손치 않은 것이고 공손하지 않으면 정성이 없으니 한얼님과 소통은커녕 담쌓는 것이며 응답을 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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